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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art by Francis Mead from the “Visions from the Inside” project

​김이화씨는 길고 긴 8개월 동안 박해와 학대를 이민자 수용소 안에서 겪은 후 2017년 12월 28일 오전에 한국으로 강제로 출국당한다. After 8 long months of abuse and harassment in immigration detention, Yihwa Kim is being forced to return back to South Korea on a morning flight on December 28 2017. Please read Yihwa Kim’s story in English here at Truthout. 

김이화씨는 한국에서 사는 동안  아버지와 그리고 그와 연관된 사람들로부터 극단적인 학대와 성폭력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2017년 4월 그녀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망명 신청을 하였는데, 곧바로 이민자 수용소로 보내졌다. 11월에 그녀는 6개월이 넘는 수용소 생활을 하면 가지게 되는 이민자의 보석 심리권을 요청하나, 그녀의 망명 심사를 담당한 판사는 전직 국토안보부 검찰관으로서 그녀의 요청을 무참히 거부했다.  오래된 수용소 생활속에 필요한 의료조치를 받지 못함으로 인해 그녀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었고, 수용소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자, 그녀는 12월 1일 입국허가취하를 요청하게 된다.  판사가 그녀의 망명신청을 취소함에 따라, 그녀는 몇 주 안에 한국으로 강제 출국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12월 1일에 있었던 공판중 그녀는 “한국으로 강제 출국을 당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 없지만, 수용소에서 2년 혹은 3년까지도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런 처지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오래된 수감 생활 동안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할 것을 감안해, 입국허가취하 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 . 나는 여기 감옥 안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탈출하고자 했던 박해를 이민자 수용소에서 거듭 겪고 있는 한국인 가정 폭력 생존자의 발언
김이화

내가 왜 2017년 4월에 샌프란시코 공항에 도착했을때 출입국 관리사무원들에 의해 집중적인 인터뷰와 검색의 대상자로 선택되었는지는 지금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나를 무례한 태도로 대하면서 방문의 이유와 상관도 없는 별별 질문을 다하더니, 창문도 없는 아주 작은 조사실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폐쇄공포증이 있으니  그 밀실과 같은 방에는 못 있겠다고 했으나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몇시간 동안 질문을 해댔고, 나의 소지품들을 일일이 몇번이나 수색했다.  그날밤 나를 공항에 억류했고, 나는 긴 의자에서 잠을 자야 했다.  다음 날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한 직원이 들어와 다시 여러 시간 동안 심문을 해댔다.  

변호사는 물론, 통역사도 제공되지 않았고, 그 상황속에서 출입국 사무직원들이 이끄는데로 많은 결정이 내려졌다.  그들이 내게 한국으로 다시 돌려보내겠다고 할때, 나는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미국으로 왔으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고, 그들은 그러면 망명신청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망명신청을 했을 경우 어떤 상황들이 수반되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결과 나는 수용소로 보내졌다.  나는 수용소에 억류되기 보다는 인도적 차원에서 주어지는 가석방을 받았어야 했는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거진 다 구속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을 한참 후에 변호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처음에 수용된 곳은 켈리포니아 리치몬드시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곳 간부들은 내가 도움을 요청했을때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나를 독방에 가두겠다고 위협했다.  그 후로 한동안 누구하고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수용소에 직접 방문하시는 한 미국인 변호사가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에서 일하는 미주 한국인 두분을 소개해 주실때 까지는. 그리고 그 두분들을 통해 센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시안여성의쉼터를 알게 되었고 그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방문과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세달 정도 지난 후 나를 (LA 에서 3시간 정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5시간 정도 떨어진) 베이커스필드에 있는 “메사베르데” 수용소로 이동시켰다. 그 곳은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이민자 소용소이다.  그곳으로 옮겨지던 날  나는 새벽 4시 반 부터 이동 준비를 강요 받았고 하루종일 여기 저기로 운송되었다. 나를 태운 이동차는 밴 종류 차량이었는데 창문이 없는 밀폐된 공간이어서 나의 폐쇄공포증 증세를 유발시켰다.  다른 억류자들을 이곳 저곳에서 태우면서 차문이 열릴 때는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물과 음식도 없이, 그리고 화장실 갈 시간도 갖지 못한채 마지막 몇시간 동안을 그 차 안에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있어야 했다.  차안의 온도는 칠월의 태양열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나는 숨막힘과 동시에 폐쇄공포증으로 인한 구토와 열에 시달렸고, 다른 수감 여성들도 다들 울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질렀다.  엘 살바도르에서 온 한 분은 격한 발작증세를 보였고 한 중국 여성은 여러 시간 동안 구토를 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처도 취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의식을 잃었다.     

메사베르데 수용소에는 현재 대략 이백명의 여성 억류자분들이 계시고, 그 중 열 다섯 혹은 열 여섯명 정도의 아시아 여성들이 있지만, 한국인은 나 혼자뿐이다.  직원들과 경비원들은 북한과 남한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며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가정하는 일이 흔하다. 또한,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가 너무 커서, 비록 내가 한국어 통역이 가능한 사람을 찾는다 해도, 내가 이야기 하는것을 적절한 영어로 옮기고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두려웠다.  예를 들어, “주민등록번호” 혹은 “종가” 라는 말들이 어떻게 영어로 변역되고 이해될수 있겠는가?  언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행동과 몸짓 하나도 문화적 차이에 의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나는 간염을 앓아 왔고 또 다른 질병들에 의해 고통과 불편함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게다가, 두통, 감기, 열 등의 다른 증상들에 쓰는 약들이 다 간염을 악화시킬 수  있기에 나는 복용할 수 없다. 수용소 음식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형편 없다. 양이 정말 적은 것도 문제지만 야채는 너무 오래돼 냄
새가 나고 거진 녹아있는 상태다.

수용소 직원들은 수감원들에게 종종 소리를 지르고 인종차별과 조롱, 그리고 성희롱를 일삼는다. 내가 환경개선을 해 달라는 요구를 함으로 인해 그들은 나를 표적으로 삼았고, 나를 “북한 노예”라 부르며 또 벌레에 비유하기도 했다.
의료진들도 마찬가지다. 한 의사는 내가 진료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만졌고, 특히 내 가슴 부위를 만졌다. 한번은 내가 왼손을 다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한 직원이 오더니 그 붕대를 풀게 하고, 두 손을 맞 잡게 하더니 아픈 왼손과 멀쩡한 오른손을 함께 수갑을 채우듯이 붕대를 감아버리고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에게는 웃기는 일이었는지 모르나 나에게는 굴욕적인 시간이었다. 한 사람은 내게 한국 여성답게 순종적 태도를 가지라 했다. 한국여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 관념을 가지고 나에게 양보를 강요했다.   

여기 수용소에는 사회복지사 분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억류되어있는 사람들을 찾아와 사무관이 못됐게 구는 일이 있는지 살핀다.  그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수감자들의 생활이 어떠한지에 대해 대화하려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가 중요한 사람이 아님을 주입시키고 아무도 내가 여기에 억류되어 있음을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수용소 생활을 한지 일곱달이 넘어간다.  내가 어떻게 취급받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미국의 방침이 인종차별을 넘어선 “인종말살”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나라를 대상으로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고 한국에 있을때 시민으로서 정상적 생활을 해왔다.  우리 조상 중 대한민국정부 건설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들도 있다.  더욱이 나는 안전과 보호를 청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런데 미국은 나의 권리를 훼손하고 쓰레기 버리듯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수용소 생활은 전쟁 수용소 생활과 전혀 다름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